오늘은 RNA에 대해서 깊이 있게 다뤄볼까 합니다. 학창 시절 생물 시간에 배운 것은 간단했습니다. DNA가 설계도이고, RNA는 그 정보를 복사해서 전달하는 전령이라는 것. 그 이상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RNA는 늘 DNA 옆에 딸린 조연이었고, 저도 당연히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RNA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생명 현상의 절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DNA가 20세기 생물학의 스타였다면, 21세기는 RNA가 주인공이 될 거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DNA와 RNA, 단순한 역할 분담이 아니었습니다
1953년 DNA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지면서 생물학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디옥시리보핵산(Deoxyribonucleic Acid)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DNA는 RNA보다 산소 원자를 하나씩 적게 가진 구조입니다. 여기서 '디옥시'란 산소가 적다는 뜻으로, 이 작은 화학적 차이가 DNA를 훨씬 안정적인 분자로 만들어줍니다. 반면 RNA는 상대적으로 불안정하고 수명이 짧습니다.
처음에는 이 불안정함이 RNA의 약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세포 안을 들여다보니 오히려 강점이었습니다. DNA는 세포핵 안에 안전하게 보관된 채 정보만 저장합니다. RNA는 그 정보를 받아 핵과 세포질을 오가며 실시간으로 작업을 수행합니다. 도서관의 영구 보관 서적과, 그날 필요한 부분만 복사해서 들고 다니는 메모지의 차이라고 할까요. 안정적으로 보관하는 것과 빠르게 움직이는 것, 둘 다 필요한 역할이었습니다.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RNA가 얼마나 다양하게 작동하는지 보입니다. mRNA는 DNA 정보를 리보솜으로 전달하는 레시피 역할을 하고, tRNA(transfer RNA)는 아미노산을 운반하는 배달원 역할을, rRNA는 리보솜 안에서 아미노산을 이어 붙이는 핵심 반응을 직접 수행합니다. 단백질이라는 요리를 만드는 전 과정에서 RNA가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단백질은 20가지 아미노산이 수십에서 수만 개 연결된 복잡한 구조물인데, 그 조립의 중심에 RNA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스플라이싱, 비효율처럼 보이지만 실은 천재적인 편집 시스템
처음 스플라이싱(splicing) 개념을 접했을 때 솔직히 이해가 안 됐습니다. 스플라이싱이란 DNA에서 전사된 RNA 전구체에서 불필요한 구간인 인트론(intron: 유전 정보를 암호화하지 않는 염기서열로, 전사 후 잘려나가는 구간)을 제거하고 필요한 엑손(exon)만 이어 붙이는 과정입니다. 긴 문장에서 의미 없는 단어를 삭제하고 핵심만 연결하는 편집 작업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왜 굳이 쓸데없는 구간을 DNA에 포함시켰다가 나중에 또 잘라내는 걸까요. 처음에는 이 구조가 너무 비효율적으로 보였습니다. 이유를 알게 된 건 대체 스플라이싱(alternative splicing: 하나의 유전자에서 인트론을 자르는 방식을 다르게 하여 서로 다른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기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나서였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오늘 정말 어쩌고저쩌고 좋은 어쩌고저쩌고 냄새가 나요"라는 문장에서 '어쩌고저쩌고'만 삭제하면 "당신은 오늘 정말 좋은 냄새가 나요"가 되지만, '어쩌고저쩌고'와 '좋은'까지 함께 삭제하면 "당신은 오늘 정말 냄새가 나요"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같은 원문이지만 편집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인간 유전자의 약 95% 이상이 이런 대체 스플라이싱을 거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덕분에 인간은 약 2만 개의 유전자로 10만 개 이상의 서로 다른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결과물을 만드는 구조입니다. 비효율처럼 보이던 인트론이 실은 엄청난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장치였던 셈입니다.
스플라이싱을 실제로 수행하는 것도 RNA입니다. 스플라이소솜(spliceosome)이라는 복합체 안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snRNA(small nuclear RNA: 세포핵 내에서 스플라이싱 반응을 촉매하는 작은 RNA 분자)입니다. 단백질만이 효소 역할을 한다는 통념이 여기서 이미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리보자임, RNA가 효소가 될 수 있다는 충격적인 발견
1982년 미국 생물학자 토마스 체크(Thomas Cech)가 리보자임(ribozyme)을 발견했을 때, 생물학계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리보자임이란 리보핵산(RNA)과 효소(enzyme)를 합친 말로, 단백질 없이도 스스로 화학 반응을 촉매할 수 있는 RNA를 뜻합니다.
그때까지 생물학의 기본 전제는 명확했습니다. 모든 효소는 단백질이다. 그런데 단백질이 완전히 제거된 환경에서도 RNA 스플라이싱이 일어난다는 실험 결과는 이 전제를 정면으로 뒤집었습니다. 엔진 없이 달리는 자동차를 본 것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리보자임이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단백질을 합성하는 리보솜(ribosome) 자체도 리보자임이었습니다. 흔히 단백질 공장이라고 부르는 리보솜 안에서 아미노산을 연결하는 핵심 반응을 촉매하는 것은 리보솜 단백질이 아니라 리보솜RNA(rRNA)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리보솜은 RNA가 주도하는 공장이었습니다.
리보자임의 발견은 생명의 기원 연구에도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DNA도 없고 단백질도 없던 원시 지구에서, 정보 저장과 촉매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분자가 필요했습니다. RNA는 이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였습니다. 이것이 RNA 월드 가설(RNA World Hypothesis: 생명 탄생 초기 DNA와 단백질이 등장하기 전, RNA만으로 유전 정보 저장과 생화학 반응이 이루어졌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현재 생명 기원 연구에서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꼽힙니다.
생명의 시작을 상상할 때 늘 크고 복잡한 무언가를 떠올렸는데, 실제로는 작고 불안정하며 다재다능한 RNA 분자 하나가 모든 가능성의 중심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RNA가 주도하는 다음 생명과학의 시대
리보자임 발견 이후 RNA의 역할은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마이크로RNA(miRNA), 긴 비암호화RNA(lncRNA) 등 새로운 종류의 RNA들이 발견되면서, RNA는 단순한 전달자를 넘어 유전자 조절 네트워크의 중심에 서게 됐습니다. 유전자 발현이 DNA 수준에서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RNA 수준에서의 조절이 훨씬 더 정교하고 역동적입니다.
지금 RNA 기반 기술은 맞춤형 치료제, 백신 개발, 유전자 발현 조절, 노화 연구까지 생명공학 전반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DNA를 읽는 시대를 넘어 RNA를 직접 조작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은, RNA를 새로운 절대 주인공으로 떠받드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실제 생명은 DNA, RNA, 단백질이 정교하게 협업하는 시스템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누가 더 중요하냐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동안 RNA를 너무 과소평가해왔다는 사실입니다.
백업 가수 취급받던 존재가 사실은 가장 다재다능한 디바였다는 것. 그게 RNA가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DNA가 생물학의 문을 열었다면, 앞으로 펼쳐질 생명과학의 다음 장은 분명 RNA가 주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