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간 수치가 높게 나왔대."
그날 저녁 엄마가 건강검진 결과지를 내밀며 한 말이었습니다. 술을 거의 안 드시는 분이라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제일 먼저 물은 것도 영양제 복용 여부였습니다. 그때서야 엄마가 평소에 얼마나 많은 걸 챙겨 드시는지 알게 됐습니다. 피로에 좋다는 것, 간에 좋다는 것, 면역에 좋다는 것까지. 정작 간을 위해 먹었던 것들이 간에 부담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도 영양제를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간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조용합니다
독성 간염*¹이란 바이러스나 알코올이 아니라, 약물이나 보충제 같은 외부 물질이 간세포에 손상을 일으켜 염증이 생기는 질환입니다. 가장 무서운 점은 초기에 거의 증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 피곤하고 입맛이 없는 정도로 시작하다가, 황달이나 진한 소변색이 나타날 때는 이미 꽤 진행된 경우가 많습니다. 엄마도 그랬습니다. 특별히 아프다는 느낌 없이 그냥 좀 피곤한 것 같다고만 하셨습니다.
독성 간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용량이 많아질수록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용량 의존성 간독성과, 정상 용량을 지켰는데도 특정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특이체질성 간독성입니다. 후자가 더 무섭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 문제 없이 먹는데 나에게만 간 손상이 생길 수 있고,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더 난감한 건 여러 영양제를 동시에 먹고 있을 때 간 수치가 올랐다면, 어떤 성분 때문인지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엄마 경우도 그랬습니다. 어떤 걸 끊어야 할지 특정할 수가 없어서 일단 모두 중단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천연이라는 말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영양제를 다시 공부하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간독성을 유발할 수 있는 성분들이 생각보다 가깝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녹차 추출물(EGCG*²)은 항산화 효과로 유명하지만, 고용량으로 농축된 형태를 장기 복용하면 간 손상 사례가 보고돼 있습니다. 저도 한때 다이어트 목적으로 녹차 추출물이 들어간 보조제를 먹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천연 성분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타민 A나 나이아신(비타민 B3)도 메가도즈*³ 형태로 복용하면 간에 축적되어 독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적하수오, 승마 추출물 같은 생약 성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연이라는 단어가 안전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걸 이 과정에서 명확하게 배웠습니다. 오히려 천연 성분은 성분 함량 표기가 불명확하거나,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효과가 강하다는 말은 그만큼 몸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는 의미입니다.
진짜 위험은 중복과 효능군 겹침에 있습니다
영양제를 여러 개 챙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분이 중복됩니다. 종합비타민에 비타민 B가 들어 있는데 피로 회복용으로 비타민 B 복합제를 추가하고, 눈 건강용 제품에도 비타민 E가 있는데 항산화용으로 비타민 E를 따로 또 챙기는 식입니다. 각 제품의 성분표를 따로따로 확인할 때는 몰랐다가, 전체를 합산해보면 하루 허용량을 훌쩍 넘는 경우가 생깁니다.
중복보다 더 주의해야 할 건 같은 효능군이 겹치는 경우입니다. 혈행 개선 효과가 있는 오메가3(EPA/DHA*⁴), 피크노제놀*⁵, 은행잎 추출물, 마그네슘, 홍삼을 동시에 복용하면 혈관 이완 효과가 지나치게 강해질 수 있습니다. 저혈압, 어지럼증, 멍이 쉽게 드는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혈당 조절 성분인 베르베린*⁶, 크롬, 바나바잎 추출물, 여주 추출물을 한꺼번에 복용하면 저혈당 위험이 생깁니다. 각각은 문제없어도, 같은 방향으로 작용하는 성분들이 합쳐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휴지기가 필요한 영양제는 따로 있습니다
루테인을 오래 먹으면 안 된다, 철분은 쉬어가야 한다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찾아보니 일반적인 적정 용량의 영양제라면 정해진 휴지기는 필요 없었습니다. 효과가 있다면 꾸준히 복용하는 게 맞습니다.
단, 고용량으로 먹을 때는 다릅니다. 지용성 비타민인 비타민 A를 메가도즈로 복용할 때, 나이아신을 고지혈증 개선 목적으로 고용량 사용할 때는 간 독성 위험이 있어 1~2개월 복용 후 쉬어주는 게 안전합니다. 비타민 D도 4,000IU 이하는 장기 복용이 가능하지만 1만 단위 이상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아연도 40mg 이상을 장기 복용하면 구리 결핍*⁷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피로감이 심해서 검사 없이 철분제를 습관적으로 먹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혈액검사를 해봤더니 철분 수치는 정상이었습니다. 필요 없는 것을 불필요하게 간에서 대사시키고 있었던 겁니다.
생약 성분은 특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세인트 존스 워트*⁸는 우울감이나 갱년기 증상 완화 목적으로 직구해서 쓰는 경우가 많은데, 간 효소(CYP450*⁹)를 촉진해서 함께 복용 중인 약물의 혈중 농도를 낮추거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항우울제, 피임약, 항응고제를 복용 중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생약 성분은 장기 복용보다 필요한 시기에만 쓰고 끊는 게 안전합니다.
간 건강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밀크시슬*¹⁰이 간 영양제의 대표 성분으로 자주 추천되는 건 근거가 있습니다. 밀크시슬에 포함된 실리마린은 간세포를 보호하고 체내 글루타치온*¹¹ 수치를 높이는 효과가 검증되어 있고, 의약품으로 활용될 만큼 임상 근거가 쌓인 성분입니다. 다만 간 수치가 정상인데도 예방 목적으로 고용량을 장기 복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한 시점에 적정 용량으로 쓰는 게 핵심입니다.
엄마 일을 겪고 나서 저는 영양제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뭔가를 추가하기 전에 세 가지를 먼저 확인합니다.
첫째, 지금 복용 중인 영양제 전체를 합산했을 때 중복되는 성분은 없는지. 둘째, 각 성분의 하루 총 섭취량이 적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지. 셋째, 복용 중인 약물과 영양제 사이에 상호작용 가능성은 없는지.
이 세 가지만 점검해도 불필요한 위험은 상당히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양제를 여러 개 복용 중이거나 한약을 장기 복용하고 있다면, 6개월에 한 번은 간 기능 검사를 받는 걸 권장합니다. 간은 상당히 망가지기 전까지는 조용합니다.
건강을 지키려고 시작한 것이 오히려 간을 해치는 일이 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더 먹을지보다 무엇을 덜어낼지를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영양제는 주연이 아니라 조연입니다.
※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정보성 글이며, 의료적 조언이 아닙니다. 영양제 복용 변경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용어 각주
*¹ 독성 간염 (toxic hepatitis) 바이러스나 알코올이 아닌 약물, 영양제, 생약 성분 등 외부 화학물질에 의해 간세포가 손상되어 염증이 생기는 질환입니다.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어 발견이 늦는 경우가 많습니다.
*² EGCG (epigallocatechin gallate) 녹차에서 추출한 대표적인 카테킨 성분으로 강력한 항산화 효과를 가집니다. 일반적인 녹차 음용은 문제없지만, 고농도로 농축된 추출물 형태를 장기 복용하면 간 손상 사례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³ 메가도즈 (megadose) 권장 일일 섭취량을 크게 초과하는 고용량을 복용하는 방식입니다. 특정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지용성 비타민처럼 체내에 축적되는 성분의 경우 독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⁴ EPA/DHA 오메가3 지방산의 두 가지 핵심 성분입니다. EPA는 혈중 중성지방 감소와 염증 억제에, DHA는 뇌와 눈의 세포막 구성에 관여합니다. 혈전 형성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다른 혈행 개선 성분과 겹칠 경우 주의가 필요합니다.
*⁵ 피크노제놀 (Pycnogenol) 프랑스 해안 소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항산화·항염 효과가 있습니다. 혈관 벽을 강화하고 혈액 순환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어 혈행 개선 성분들과 함께 복용 시 효과가 중첩될 수 있습니다.
*⁶ 베르베린 (berberine) 황련 등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혈당 조절과 지질 대사 개선에 효과가 있습니다. 혈당을 낮추는 기전이 있어 같은 방향으로 작용하는 성분들과 동시 복용 시 저혈당 위험이 있습니다.
*⁷ 구리 결핍 (copper deficiency) 아연과 구리는 체내 흡수 과정에서 경쟁합니다. 아연을 고용량으로 장기 복용하면 구리 흡수가 억제되어 결핍이 생길 수 있습니다. 구리 결핍은 빈혈, 신경 장애, 면역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⁸ 세인트 존스 워트 (St. John's Wort) 서양고추나물이라고도 불리는 허브로 경증 우울증과 갱년기 증상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간의 약물 대사 효소를 강력하게 활성화해 다양한 약물의 혈중 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약물 상호작용의 주요 원인 성분으로 꼽힙니다.
*⁹ CYP450 (cytochrome P450) 간에서 약물과 이물질을 분해하는 데 관여하는 효소군입니다. 이 효소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함께 복용 중인 약물이 너무 빨리 분해되어 효과가 줄거나, 반대로 억제되면 약물이 체내에 쌓여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¹⁰ 밀크시슬 (milk thistle) 엉겅퀴과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주요 활성 성분인 실리마린이 간세포를 보호하고 재생을 돕습니다. 간 기능 개선 분야에서 가장 많은 임상 연구가 이루어진 성분 중 하나로, 의약품으로도 활용됩니다.
*¹¹ 글루타치온 (glutathione) 간의 해독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항산화 물질입니다.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독성 물질을 수용성으로 변환해 배출을 돕습니다. 밀크시슬의 실리마린은 간 내 글루타치온 농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