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애는 천재인가 봐”라는 말을 어릴 때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저 역시 그런 칭찬을 들으며 자랐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스스로를 천재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흔히 천재는 IQ가 높거나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여러 사례와 연구를 접하며 느낀 건 조금 달랐습니다. 진짜 차이를 만드는 건 지능이 아니라 창의성, 그리고 그 창의성을 대하는 태도에 가까웠습니다.
남들이 “다 읽었어”라며 덮어버린 책을 다시 펼쳐보고, “아직 더 남아 있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저는 그 지점에서 천재와 범인이 갈린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1. 천재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복잡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창의적인 사람들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들은 불안, 우울, 기분 기복 같은 심리적 특성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데 동시에 대인관계나 삶의 만족도에서는 건강하게 기능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 모순이 저는 인상 깊었습니다. 창의적인 사람은 결함이 없어서 강한 게 아니라, 결함을 다루는 방식이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감정과 예민함을 억누르기보다, 그것을 재료로 사용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 어쩌면 천재는 ‘흠 없는 사람’이 아니라 ‘흠을 쓰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2. 공상은 낭비가 아니라 창의성의 연료다
2-1.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란 무엇인가
창의성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입니다. 우리가 특정 과제에 집중할 때가 아니라, 멍하니 공상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회로입니다. 저는 이걸 ‘상상 네트워크’라고 이해하는 게 더 와닿았습니다.
이 네트워크가 활발할수록 자기 성찰과 자기 객관화 능력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즉, “나는 왜 이렇게 반응하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 같은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회로라는 거죠.
2-2. 아이디어는 왜 샤워 중에 떠오를까
저는 좋은 생각이 책상 앞이 아니라 샤워 중이나 산책 중에 떠오르는 경험을 자주 했습니다. 몸은 자동으로 움직이고, 머리는 느슨해질 때 말이죠. 이런 상태에서 DMN이 활성화되기 쉽다고 합니다.
물에 닿으며 몸이 이완되고,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면 뇌는 과제 수행 모드에서 벗어나 연결과 상상의 모드로 전환됩니다. 그래서 ‘멍때림’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창의성이 자라는 토양일 수 있습니다.
3. 과거·현재가 아닌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
창의적인 사람들의 공상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과거 회상이나 오늘의 할 일 리스트에 머무르기보다, 미래를 상상한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한동안 “오늘 뭘 끝내야 하지?”라는 질문에만 매달려 살았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나는 거기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은 거의 던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미래를 상상하는 습관 자체가 사고의 범위를 넓히고, 새로운 연결을 가능하게 만드는 출발점일지도 모릅니다.
4. 고독: 외로움과는 다른 능력
4-1.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
심리학자 위니컷은 정서적 성숙의 중요한 조건으로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말했습니다. 여기서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혼자 있음입니다.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영상이나 SNS와 함께 보냈습니다. 즉, 물리적으로는 혼자였지만 심리적으로는 끊임없이 연결된 상태였던 겁니다.
4-2. 자기 객관화와 불행의 관계
자기 객관화가 잘 되지 않으면, 작은 비판에도 크게 흔들립니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의 간극이 커질수록 불행감도 커집니다.
저 역시 제 불행의 상당 부분이 그 간극에서 왔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간극을 줄이는 방법은 더 많은 자극이 아니라, 오히려 혼자 사유하는 시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5. 개방성: 창의성의 문을 여는 태도
5-1. 도파민은 ‘중독 물질’이 아니라 ‘탐색 물질’
창의적인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경험에 대한 개방성입니다. 새로운 것을 향한 탐색 욕구는 도파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도파민은 흔히 중독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본질적으로는 “새로운 것을 원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확실성보다, 아직 모르는 불확실성이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5-2. 덜 걸러지는 정보, 더 많은 연결
창의적인 사람들은 감각 정보를 완벽히 정리해 걸러내기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만해 보일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산만함을 단점으로만 여겼지만, 그것이 새로운 연결의 재료가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듣고 시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물론 산만함 자체가 곧 창의성은 아니지만, 적어도 모든 ‘잡음’을 제거해야만 좋은 사고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수정하게 됐습니다.
6. 교차 훈련: 다른 영역이 나를 키운다
‘한 우물만 파라’는 말과 달리, 창의성 연구에서는 교차 훈련을 강조합니다. 내 전문 영역이 아닌 낯선 분야를 경험하고 돌아오면, 오히려 본업의 사고가 확장된다는 겁니다.
저 역시 최근 몇 년간 제 분야만 깊이 파고들었는데, 다른 영역을 탐색하는 걸 게으름으로 취급했던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됐습니다. 낯선 경험은 사고의 틀을 흔들고, 그 틈에서 새로운 연결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7. 역경은 필수인가? 고통 말고도 성장하는 법
7-1.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많은 창의적인 인물들의 삶에는 결핍과 역경이 등장합니다. 큰 사건이 기존의 세계관을 무너뜨리고, 다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성장이 일어난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한 발 물러서고 싶었습니다. 고통이 성장의 조건이라는 메시지는 자칫 고통을 미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7-2. 희열 후 성장: 경이로움의 힘
다행히 연구는 다른 가능성도 보여줍니다. 강렬한 긍정 경험—삶의 경이로움, 깊은 연결, 존재의 의미를 다시 느끼는 순간—역시 사람을 크게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이 관점은 저에게 큰 위로였습니다. 우리는 굳이 상처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삶에서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장면을 늘릴 수는 있습니다.
8. 결국, 창의성은 태도의 문제다
정리해보면,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의 뇌는 전혀 다른 종이어서가 아니라,
- 공상할 시간을 허용하고
- 고독을 견디며
- 경험에 개방적이고
- 역경이나 경이로움을 성장의 재료로 재해석하는
태도를 지녔기 때문에 다르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요즘 저는 일부러 혼자 걷는 시간을 만들고,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을 읽으며, “오늘 뭘 해야 하지?” 대신 “앞으로 무엇이 달라질까?”라는 질문을 더 자주 던지려고 합니다.
제 안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믿게 됐습니다.
창의성은 타고난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매일의 태도와 선택이 만드는 능력일지도 모른다는 것.
어쩌면 천재가 되는 일은, 거창한 재능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을 조금 더 열어두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