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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골고루 쓰는 법(해마 기억력, 번아웃 예방, 뇌 가소성)

by everyouthman 2026. 3. 5.

뇌 일러스트 이미지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처럼 한 번 들으면 바로 정리되던 것들이 어딘가에 걸려 있는 느낌, 책을 읽어도 또렷하게 남지 않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만 이런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다 내 뇌가 작동을 멈추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을 느낀다고 합니다. 특히 AI가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를 살다 보니, ‘나는 점점 느려지는 것 같은데 세상은 더 빨라진다’는 감각이 묘하게 겹쳐집니다. 그런데 최근 뇌과학 연구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뇌에 대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해왔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나이 들수록 떨어진다는 착각, 해마 기억력의 진실

저는 오랫동안 나이가 들면 학습 능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나빠지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믿어왔습니다. “나이 들면 다 그렇지”라는 말도 너무 익숙했고요. 그런데 연구들을 보다 보니, 이 생각이 꽤 단편적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뇌는 단순히 ‘줄어드는 기관’이 아니라, 환경에 맞게 계속 재조정하는 기관이었습니다.

뇌의 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경험과 학습을 통해 뇌의 구조와 기능이 변화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흔히 젊을 때만 가능한 능력처럼 이야기되지만, 실제로는 나이가 들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속도와 방식이 달라질 뿐입니다. 겉으로는 일부 구조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어도, 기능적으로는 다른 경로를 만들어 같은 일을 해내려는 적응이 일어납니다.

이 점은 특히 고령자 연구에서 인상적으로 드러납니다.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인지 기능을 유지하는 사례들을 보면, 뇌는 단순히 “젊음 = 좋음, 노화 = 나쁨”이라는 이분법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마치 20대부터 꾸준히 운동한 사람이 60대가 되어도 체력을 유지하는 것처럼, 뇌 역시 어떻게 써왔는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남습니다.

기억을 담당하는 핵심 영역 중 하나가 해마(Hippocampus)입니다. 해마는 측두엽 깊숙한 곳에 위치하며 기억과 공간 인지를 담당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기억을 사진처럼 저장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찰칵’ 찍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보는 방식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퍼즐에 가깝습니다. 하나의 경험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분산 저장되고, 기억을 꺼낼 때마다 그 조각들을 다시 맞추는 과정을 거칩니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편집을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편집된 기억이 다시 저장되면서 원래의 흔적을 덮어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사건을 두고도 사람마다 기억이 다를 수 있습니다. 기억은 고정된 파일이 아니라, 꺼낼 때마다 다시 써지는 이야기라는 사실이 인상 깊었습니다.

해마에는 위치 세포(Place Cell)라는 특이한 세포들도 있습니다. 이 세포들은 특정 공간이나 맥락에서만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처음 가본 장소에서 길을 헤매다가, 두 번째 방문에서는 구조가 잡히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는 단순한 ‘익숙함’이 아니라, 뇌가 그 공간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런 공간 인지 능력이 단순히 길 찾기에만 쓰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할 때도 ‘구조를 세운다’, ‘핵심 기둥을 잡는다’ 같은 공간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사고 자체가 일종의 구조화 과정이며, 그 배경에 해마의 역할이 관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쪽만 쓰면 무너진다, 번아웃의 뇌과학

최근 몇 년간 가장 크게 체감한 문제는 번아웃이었습니다. 일은 계속해야 하는데 의욕은 바닥을 치고, 쉬어도 개운하지 않은 상태. 저는 번아웃을 단순한 과로나 마음의 문제로만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뇌의 관점에서 보면, 번아웃은 특정 영역만 과도하게 사용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뇌는 진화 과정에서 여러 구조를 덧붙이며 발전해왔습니다. 각각의 영역은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며, 자연스러운 상태에서는 교대 근무하듯 돌아가며 작동합니다. 새로운 맥락과 이야기를 처리하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행동을 담당하는 영역도 있습니다.

문제는 현대 사회의 생활 방식입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읽고, 쓰고, 분석하는 식의 한 가지 모드에 오래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반복적인 기계적 작업만 장시간 지속하는 환경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한 영역만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뇌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입니다. 이는 특정 과제에 집중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 네트워크로, 자기 성찰과 창의적 사고와 관련이 있습니다. 몸은 익숙한 반복을 하고, 의식적인 문제 해결에서 잠시 벗어나는 순간—예를 들어 산책이나 샤워, 수영처럼 자동화된 움직임을 하는 시간—에 이 네트워크가 활성화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순간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험을 합니다.

요즘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단순 작업은 기계가 하고 인간은 창의적인 일만 하면 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뇌는 그렇게 단선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반복적인 활동과 고차원적 사고가 교차할 때 오히려 더 건강하게 기능합니다. 일상적인 집안일이나 가벼운 운동이 단순한 낭비가 아니라, 뇌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과도한 단순 노동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핵심은 다양한 모드를 오가며 뇌를 사용하는 생활 구조입니다.

정리해보면, 번아웃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세 가지 균형입니다.

  1. 새로운 맥락을 경험하는 시간 – 낯선 것을 배우고, 다른 환경에 노출되며 해마를 자극하는 활동
  2. 반복과 자동화를 만드는 시간 – 운동이나 악기 연습처럼 몸에 밴 반복을 통해 다른 회로를 사용하는 활동
  3. 의식적으로 비우는 시간 – 멍하니 걷거나 쉬면서 디폴트 모드를 활성화하는 시간

시행착오가 뇌를 확장한다

교육 현장에서 자주 관찰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질문을 던지면 쉽게 답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틀릴까 봐, 정답이 아닐까 봐 주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뇌는 환경에 적응하는 기관입니다. 오랫동안 정답 중심의 환경에 놓이면, 틀리지 않는 것이 최우선 전략이 됩니다.

그러나 시행착오는 뇌 성장에 필수적입니다. 틀리고, 수정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신경 연결이 형성됩니다. 안정만 추구하면 뇌는 더 이상 확장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짜증이 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회로를 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복하면 그 회로는 점점 단단해집니다. 이것이 가소성의 실제 모습입니다.

저는 이제 나이를 숫자로만 보지 않으려 합니다. 중요한 건 지금까지 뇌를 어떻게 써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입니다. 흐리멍텅해진 느낌이 들 때마다, 그것을 곧바로 ‘퇴화’로 해석하기보다 ‘한쪽으로만 쓰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으로 바꿔보려 합니다.

결국 멍청해지지 않으려면 특별한 비법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뇌를 골고루,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생활 방식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몸을 움직이고, 의도적으로 비우고, 시행착오를 허용하는 것. 두려움 대신 사용을 선택하는 것.

그게 제가 내린 가장 현실적인 결론입니다.